역사의 뒤안길에서 스치듯 돌아 본 중부유럽 5개국 2007-11-11 03:27:35  
  이름 : 이대우  (59.♡.162.71)  조회: 2752    

 

    이 대 우


▷역사의 뒤안길에서 스치듯 돌아 본 중부유럽 5개국

  여행,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수천 년 전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랐다가 되돌아오는 시간여행이다.

  한 참 오래 전 출장길에 짬을 내어 스쳐 지나쳤던 도시들, 직장에서 물러난 후 법인단체에 근무하면서 두 차례, 민간회사에 적을 두고 있을 때 유레일패스를 이용한 기차여행 한 차례 그리고 이번에는 완전 자유인으로 5번째 유럽여행인 샘이다.

  실속관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저렴한 패케이지 상품에 묻어가긴 했지만 올적 갈 적 따라붙은 가이드의 안내와 나라가 바뀔 적마다 새로운 전문가이드가 해박한 지식과 달변으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슈퍼마켓 형식으로 몽땅 털어서 설명해 주니 그냥 듣고만 있으면 되었다. 극기 훈련에 견줄 만 한 힘든 여정이었지만 8박10일 간의 일정을 그렇게 마치고 돌아왔다.

▷인천=>프랑크푸르트=>로마=>폼페이=>나폴리=>카프리=>피렌체=>밀라노=>인터라켄=>융프라우=>베른=>파리=>런던=>하이델베르그=>프랑크푸르트=>인천

   2007년 07월 03일(화) 13시:55분 인천과 프랑크푸르트를 왕복 운항하는 독일 루프트한자 L H 713기 에 몸을 싣고 장도의 여행길에 올랐다.

  비행기는 곧바로 서해 상공으로 치고 올라가 베이징상공을 금세 지나치더니 몽골, 러시아, 그리고 북 유럽국가 상공을 비행한 끝에 같은 날 오후 6시, 11시간 30분의 지루한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3시간을 기다렸다가 국내선 비행기에 갈아타고 2시간여를 더 남쪽으로 비행한 끝에 이번여행의 최초 목적지 로마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기 중인 전용버스로 한 시간을 이동하여 로마 변두리 이름 모를 해변 가 숙소에 유럽여행의 첫 여장을 풀었다. 시 차는 -8시간 이었으며 기온은 여행기간 내내16도에서 25도를 오르내렸다.

 

 ◈이태리

로 마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에 와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언어문화에 녹아있는 표현들이다.

  “한 국가의 패망은 새로운 국가 가 그 뒤를 잇게 하는 변증법적 순환의 과정을 반복한다.” 라고 했다.

  기원전 753년에 왕정으로 세워진 고대 로마제국은 천년 넘게 무지막지한 힘으로 지중해 연안 광활 한 땅을 지배했지만 결국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힘을 잃고 초라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로마는 이태리의 수도이다. 로마는 또 그 안에 市國 이라는 작지만 막강한 종교적 힘을 세계에 과시하는 바티칸을 품고 있다.

  로마는 커다란 대리석의 돌무덤이다. 전쟁으로 점철된 지난역사의 무덤 속에서 겹겹이 묻었던 흔적들을 파내어 퍼즐 맞추듯 맞추어 나가고 있다. 

  

 그들은 그 무덤 속에서 로마제국의 정치, 문화, 사회가 얼마나 화려하고 막강했으며 위엄과 권위의 상징물로 표현되는 거대한 건축물들의 실체를 그렇게 재현시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지구인들에게 자기들 선조들의 우수성을 공개하며 과시하고 있다.

  

◇바티칸 市國 (State della citta del vaticano)

   바티칸 박물관 입장시간은 오전 10시 부터인데 벌서 길게 행렬이 무리지어 늘어서있다. 2~3시간은 끈기 있게 기다려야 입장 할 수 있다.

   그 사이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주기라도 하듯이 집시여인들이 입장객 사이사이를 누비며 여행객의 호주머니 털기에 여념이 없다. 아주 진풍경이다. 한쪽 팔에 천을 걸치고 표적에 접근하면 그것으로 작업은 끝이다. 간혹 들키면 계면쩍은 미소로 응대 하고 몇 발짝 자리를 옮기면 그만이다. 전에 나도 한차례 당한 바 있어서 바짝 긴장 되었다. 참 아이러니한 나라다. 마치 사회가 빈곤한 무리를 위하여 소매치기들을 직업인으로 인정하여 방조 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손가락이외의 그 어떠한 도구도 사용 할 수 없다. 그것이 이태리 소매치기들의 불문율이다.

  바티칸 시국의 박물관은 주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그림들로 천정과 벽이 도배되어 있다.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시킨 3대 거장인 이들은 이탈리아 태생의 화가이며 건축가이고 그리고 교황청의 궁정화가로도 활동하며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특히 성서를 주제로 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기독교 문화에 강열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시스티나 예배당과, 세계 카톨릭의 총 본산 성 베드로 대성당 순으로 관전 하게 되며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산피에트로 광장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 곳에서는 뉴스에서 자주 보게 되는 교황이 손 흔들어 주던 창문과 광장 한 편에 분수대와 이집트에서 옮겨 왔다는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프랑스가 우리의 규장각도 그렇게 옮겨 간 것일까?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강탈 내지 훔쳐갔다는 표현보다 훨씬 문화적인 표현법이다.

  

◇나폴리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이태리인들의 속담이다.

 나폴리가 너무 아름다워 폭군 네로는 나폴리에서 그의 황제 취임식을 가졌고 아예 별장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나폴리는 로마와 밀라노에 이어 이태리 3대 도시 중 하나이다. 이태리 남부의 최대의 천연 항구이며 세계 3대 미항이기도 하다. 인구라야 고작 180만의 우리나라 중소도시 밖에 되지 않지만 그리고 북부 도시들처럼 무게 있고 귀티 나고 풍요롭지는 못하여 거의 모든 경제적 지원을 북부도시들에게서 의존하고는 있지만 아름다운 산타루치아 항구가 있고 숱한 고전 음악을 탄생 시켜왔고 낭만과 여유가 있는 향기 넘치는 도시이다. 저 건너에 베스비오 산이 있어 파도를 막아 주고 폼페이와 소렌토와 카프리 섬을 품안에 안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다. 나폴리는 로마에서 245km 버스로 3시간이 소요된다.


 ◇폼페이

   “폼페이 최후의 날”

  한 도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그리고 1700여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근 세기 들어 그 모습을 적 나라 하게 지상에 들어내 보였다.

  서기 79년 8월24일 폼페이로 부터 8키로 미터 떨어진 베스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그리고 도시를 화산재로 두껍게 덮어버렸다. 날벼락이란 표현이 가장 알맞다. 갖가지 인간사회가 활동 할 수 있는 평상시의 모습 그대로 정지화면처럼 화석으로 굳어져 묻혀 진 것이다. 식탁에 않은 체로, 목욕하는 자세로, 잠자는 모습으로 일하는 모습으로, 돈을 세는 모습으로 그렇게 폼페이는 사라졌다가 1784년 우연히 그 실체가 들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들어내 진 것은 극히 일부이지만 현대인은 그곳에서 1700년 전 한 도시의 옛 모습을 현세와 비교 하면서 사회 진화의 연구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로마에서 남쪽 방향으로 270km 3시간 30분소요.

 

  ◇소렌토

 “돌아오라 소렌토로”

   폼페이에서 작은 마을들을 연결해주는 협궤전차를 타고 계획된 여행 길 을 따라 소렌토로 달린다. 나폴리에서 소렌토로 수영을 간다는 무리의 티 없이 맑은 아이들과 중학교 때 부르던 “돌아오라 소렌토”로 노래를 합창하면서 가다보니 어느 사이 소렌토 역에 도착했다. 소렌토가 종착역이다.

  오래 전에 유래일패스로 유럽일주 기차여행을 할 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나폴리 역에서 소렌토 행 전차를 탔다. 조심조심했는데 결국 전차에서 카메라를 도둑맞아 소렌토를 몇 정거장 남겨 놓고 중간 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경찰에 신고하고 조서를 꾸미고 하다가, 카메라는 찾아줄 생각도 없이 “눈감으면 코 베어 간 다” 는 뚱보 경찰관의 몸짓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하고 그만 가던 길을 멈추고 뒤 돌아 섰던 터라 이번 소렌토 여행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소렌토가 아름다운 것인가 아님 음악과 노랫말이 아름다운가? “오 쏠래미오 너 참 아름답다” 그 찬란한 햇빛 속에 지중해 쪽빛 바다가 세계인을 유혹한다.

 

◇카프리 

   카프리 섬은 소렌토에서 쾌속 페리로 40분을 서쪽으로 달리면 나타난다. 섬의 크기는 너비가 1.6km, 길이가 2km, 높이가 299m의 조그마한 섬이다. 멀리서부터 바라보이는 섬의 정경이 무척 이색적이다. 백옥같이 흰 배가 떠있고 하나같이 하얀 색칠을 한 집들이 나무사이로 빛난다. 섬에 도착하면 바로 눈앞에 모래도 아닌 큰 자갈해변에서 아슬아슬하게 가릴 곳만 살짝 가리고 일광욕을 즐기는 여성들이 관광객을 먼저 맞는다. 동양인에게는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해변을 잠시 돌아보고 나면 산 꼭 때기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긴다.  

  직 삼각자를 세로로 새워 넣은 것처럼 가파른 하늘언덕 길을 버스가 아슬아슬 오르내리는 모습만으로 관광객의 호기심이 고조된다.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이다. 35인승 미니버스가 가드레일도 없는 현기증 나는 천 길 낭떠러지 고부랑길을 달리며 쉴 사이 없이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버스가 정상쯤에 이르면 기사는 멋진 가창력으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불러 준다. 그 노래는 위험에 몸 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켜주기도하고 아름다운카프리의 풍경 속으로 푹 빠져들게 하기도 한다.

  버스가 멈추면 아나카프리(Anacapri) 정상에 올라가기 위한 리프트가 기다린다. 1인용으로 10여분정도 올라가는데 이때 카프리의 아름다운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집들과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지중해 바다와 잘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저 멀리로 나폴리항구가 넓게 펼쳐져 보이고 “잔잔한 다다위로 저배는 떠나가고 노래를 부 루니 나폴리라네” 옛 노래가 어른거린다.

 

  ◇피렌체

  로마에서 4시간을 달려 꽃의 도시 피렌체에 도착했다.

  영어로는 플로렌스(Florence)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의 주 도 이다.

 

 꽃과 같이 아름답다는 말 밖에 더 좋은 표현을 찾을 수 없는 도시이다. 이웃 밀라노와 비엔나에 가려서 아니 더 멀리 로마에 가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도시이다. 한 도시가 도시의 기능을 따지기 이전에 어떻게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 가?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온통 벽돌색 붉은 톤의 지붕과 도시중앙에 연록 색의 두오모, 간간히 지붕사이로 보이는 회색의 벽 그리고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아르노 강과 녹색의 나무들과 아치형 교량들이 연출해 놓은 미의 조화이다. 도시내부로 들어가면 더 큰 감탄에 할 말을 잊는다. 도시의 역사적 배경이나 배치미학, 조각들의 미술적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옛 건축물들의 정교함과 미적 우수성 하나만으로도 이곳은 도시전체가 보물임에 손색이 없다. 유네스코가 도시전체를 인류문화유산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의 신행정 수도에 기대 해 본다.  


   

◇ 밀라노

   이탈리아는 도시마다 독특한 특색이 있다. 특히 건축물들이 다양하다.

그 특색 중 공통점의 하나가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표출 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해 낸 것이다. 그것은 현대의 건축기술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보물 적 가치를 지닌다.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생명력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경제 중심지이다.

  우리에게 패션의 도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두오모(라틴어domus:영어dome) 그들은 성당을 그렇게 부른다. 광장을 중심으로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가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거대한 아케이드와 전통 있는 카페, 의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서 연중 수많은 패션쇼가 열린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음식, 오페라의 중심인 스칼라 극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피에타로 유명하다. 가게마다에 형형색색의 햇빛 가리게 어닝 이 도시미관을 한층 더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스위스

  ◇톱 오브 유럽

  밀라노에서 4시간 꼬불꼬불 알프스 산을 넘어 스위스가 가까워지면서 융프라우의 설경과 잔잔한 호수와 물위에 비친 융프라우의 그림자와 파란잔디위의 하얀 집들과 어우러져 한 없이 정겹다.

  그동안 다분히 인위적이고 중압감마저 느끼게 했던 도시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순수 자연의 품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앞서의 도시들에서 짓눌렸던 가슴을 쉼 호흡으로 씻어내 본다.

  인터라켄의 오스트역에서 설상전차를 타고 오르다가 중간에서 몇 차례 바꾸어 타기를 하다보면  융프라우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알프스의 눈 덮인 설산을 밟으며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눈 장난을 치기도 하고 얼음동굴을 관광하기도 한다. 수시로 변하는 기상으로 인해 융프라우는 쉽게 자기의 모습을 들어 내 보이지 않지만 그날 다행히 순간이었지만 그 장관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융프라우의 높이는 4,158m.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상역인 융프라우 요흐(높이 3,454m)에서 융프라우의 장관을 바라볼 있다.


◈프랑스 와 영국

   ◇파리 와 런던

   스위스 베른에서 떼제베로 3시간 30분여 달리면 파리의 리용역에 도착한다.

  운항시간은 3시간 30분이지만 2시간 30분간은 보통의 속도로 달리다가 마지막 한 시간 정도를 고속열차의 속도로 달리게 된다. KTX가 목포구간을 운항하는 것과 같다.

   도착하자마자 정해진 코스에 따라 베르사이유 궁전,  세느강유람선, 에펠탑전망대, 루브르박물관, 등을 관전하게 된다. 루브르박물관의 미술품들이 동양인의 눈을 휘둥그렇게 한다.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은 하지만 가슴에 와 닫지는 않는다. 미술에 대한 나의 무지일 게다.

   파리 관광을 마치면 런던으로 건너가 웨스트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의 시계탑 빅벵, 영국여왕이 살고 있는 버킹검 궁전을 스치듯, 멀리서 눈도장만 찍고 마지막 대영박물관으로 이동하지만 볼거리는 없다. 이집트에서 옮겨 온 부서진 조각품과 그들의 고대 썩지 않은 송장이 전시되어 있지만 일반인에게 그것은 관심거리가 아니다. 다만 관람순서대로 발길을 옮겨 다니다가 별 관심 없이 둘러 볼 뿐이다. 때문인지 입장료가 없는 유일한 박물관이다. 지구의 반쪽을 차지했었고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위상을 생각할 때 속빈강정처럼 느껴진다. 볼거리가 없다는 뜻이다. 아이러니다. 초라한 한국관이 이색적이다. 보통시민과의 접근을 원치 않는 듯 했다. 그 철옹성의 육중한 건물들만이 말없이 런던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의 주요 무대였던 하이델베르크

네카 강변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는 프랑크프루트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30분여를 아우토반을 달리다 보면 도착한다. 유서 깊은 대학도시답게 차분하고 아담하며 낭만적인 분위기가 여행객을 사로잡는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하이델베르크 시가지를 전망할 수 있으며 관광을 마치고 내려오면 하이델베르크대학 광장에 서게 된다. 잠시 시간 내어 학사주점에서 맥주 한 잔 시켜 넣고 귀공자 칼 하인리히와 주점소녀 케티 와의 첫사랑에 얼 킨 영화 이야기도 들어보고 축배의 노래”(drinking song)도 한곡 청하여 듣고 싶었지만 단체여행의 틀을 깰 수가 없어서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곳에서 괴테가 산책했다는 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괴테가 극찬했던 네카강 다리에서의 경치를 볼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386년에 설립되었고 노벨상 수상자를 현재 일곱 명이나 배출하고 있다.


◈에필로그

  일차 세계대전과 이차세계대전의 발상지이며 패전국 독일, 그럼에도 그들은 통일의 기반을 일찍이 완성했고 수상이 직접 유태인 학살기념비를 찾아가 두 무릎을 꿇고 통한의 속죄를 한나라, 독일에서 이번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다.

  육 십 년대 우리 경제가 바닥을 드러냈을 때 서독의 수상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수출의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 나라, 그래서 우리들 어머니의 검은 머리카락은 모두 잘려져 첫 수출의 문을 열어주었고 학사 실업자가 넘쳐날 때 간호사와 탄광 노동자를 받아준 나라.

  월드컵이 끝나고 독일의 우상과 같은 베켄바우어 감독이 국영 TV에 나와 1시간 40분씩이나 우리 한국을 배우자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나라, 그래서인지 독일 사람들은 코리아를, 또 나 역시도 그들에 대하여 친근감을 감출 수 없다.

  여행 내내 서양음식으로 느끼함이 느껴질 때는 어김없이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트레비광장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한국말을 하는 가계점원의 애교를 들을 수 있었다. 스위스 인터라켄 중심가에 태국기가 펄럭이고 한글 간판 “금강”식당 이 성업 중이다. 융프라우 산상열차에서 우리말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융프라우 요흐 에서는 우리나라 컵라면을 팔고 있다. 카프리 행 선박 내에서도 삼성전자 LCD TV를 볼 수 있었다. 각 나라의 대학마다에 한국어과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요 도시와 공항마다에 한국의 대표기업이미지가 우리의 어깨를 으쓱 하게 해 주어 행복했다. 달리는 관광버스에다 우리나라 관광사 한글로고를 크게 붙이고 유럽을 누비고 다녔다. 눈물겹도록 고마운 우리나라 대한민국, 위대한 우리민족, 우리나라의 위상은 나라 안에서 생각 한 것 이상으로 더 커 보였고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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